사무엘상 9장, 사울의 등장

왕을 찾는 이스라엘, 그리고 사울의 등장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사건이 소개된 직후, 한 가정의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베냐민 지파에 속한 한 유력한 인물, 기스라는 사람의 아들 ‘사울’에 관한 이야기다. 사울은 준수한 외모에 키도 커서, 이스라엘에서 가장 보기 좋은 청년으로 묘사된다. 이는 백성들이 원하는 왕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인물임을 암시한다.
어느 날, 사울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기 위해 사환과 함께 길을 떠난다. 3일간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했고, 이제 아버지가 걱정할까 봐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사환이 근처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를 찾아가 도움을 구해보자는 제안에 사울은 동의하고, 초라하나마 정성을 담은 예물도 준비하여 길을 나선다.
이 모든 과정은 고대 근동 사회에서는 신앙과 관계없이 흔히 있을 수 있는, 매우 일상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이 평범한 일상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의 통로가 된다.
사무엘과 사울의 만남, 하나님의 인도하심
사무엘은 이미 하루 전날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 “내일 이 시간, 내가 보내는 자가 도착할 것이며,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라”는 말씀이었다. 그가 베냐민 지파 출신이라는 점도 명확히 밝혀주셨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일은 백성들의 반역적인 요구에 대한 응답이면서도, 자비롭고 구속적인 섭리의 일부였다.
마침내 사울이 라마 성읍에 도착했고, 물 길으러 온 소녀들의 안내를 따라 산당으로 올라가던 중 사무엘과 마주친다. 하나님께서는 이 만남의 순간, 사무엘에게 "이 자가 그 사람이다"라고 알려주신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시를 통해 사무엘을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울의 일상 속 평범한 사건들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일하고 계심을 보게 된다.
나귀를 잃어버린 일, 사환을 동행한 일, 예물을 준비한 일, 성읍에 들어선 시점 등은 모두 사울이 계획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 안에 정확히 들어맞는 섭리의 일부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까지도 주권적으로 사용하신다.
사울에게 주어진 부르심과 반응
사무엘은 사울에게 자신이 찾던 선견자라고 밝히고, 함께 식사하자고 권하며, 잃어버린 나귀는 이미 찾았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온 이스라엘이 찾고 있는 사람이 바로 사울이라고 선언한다. 이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로서의 사명이 주어졌다는 뜻이었다.
이후 사울은 제사 자리에서 상석에 앉아 넓적다리 고기를 대접받는다. 이 고기는 제사에서 가장 귀한 부위로, 가장 존귀한 자에게 주는 몫이었다. 사무엘은 그날 밤 사울과 지붕 위에서 긴 대화를 나눈 뒤, 다음 날 아침 사울에게 기름을 부으며 그를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세운다.
사울은 사무엘의 말에 당황하며 매우 겸손한 반응을 보인다. 그는 자신이 베냐민 지파, 그중에서도 가장 미약한 가문 출신임을 언급하며 몸을 낮춘다. 이 겸손이 지속된다면, 하나님께서도 그를 존귀히 여기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후의 역사를 알고 있다. 백성들이 원한 왕, 외모로 뽑은 왕, 그가 결국 어떤 길로 가는지를 말이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일상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불완전한 요구조차도 섭리 안에서 사용하신다는 점, 그리고 그 섭리는 우리의 일상 속 아주 평범한 사건들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구할 때, 그것이 단순히 우리의 소원일 뿐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인지 돌아보아야 한다. 원하던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그것이 축복인지 혹은 경고인지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요구를 그대로 허락하시지만, 그것이 우리를 위한 최선은 아닐 수도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평범한 일상에 대해 불평하거나 염려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지금 내 삶의 자리, 나귀를 찾아 헤매는 것 같은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목적이 담겨 있음을 기억하며, 매 순간을 성실과 순종으로 채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