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대제와 밀라노 칙령
이제껏 신구약 중간사를 보면서 기독교가 자리잡아 오는 과정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의 고난과 순교의 현장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오랜 세월 동안 로마 제국에서 핍박받던 기독교인들의 박해가 끝나고 기독교가 국가의 종교로 공인되는 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로 들어가 볼께요.

오랜 세월 동안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인은 '숨죽여 살아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로마 황제들은 종종 기독교인을 박해했고, 콜로세움에서는 많은 신자들이 사자밥이 되기도 했지요.
그런데 세상이 뒤집히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밀라노 칙령 이야기입니다.
1.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누구인가?
콘스탄티누스(Flavius Valerius Constantinus)는 서기 272년쯤 태어난 로마의 장군 출신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로마 제국의 고위 관리였고, 어머니 헬레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하지만 당시 로마는 절대 기독교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로마 신들을 섬기지 않는다고 기독교인들을 처형하기 일쑤였죠. 그런 세상에서 콘스탄티누스는 성장했습니다.
2. 운명을 바꾼 전투-밀비우스 다리 전투
312년, 콘스탄티누스는 황제 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막센티우스와 격돌하게 됩니다. 이때, 전투를 하루 앞두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콘스탄티누스는 하늘에서 "이 징표로 승리하리라(In hoc signo vinces)"라는 글자와 함께 빛나는 십자가를 보았다고 합니다.
⛤놀란 그는 급히 군사들의 방패에 그리스도의 상징(☧)을 새기게 했습니다. 이 기회는 '키로(XP)'라고 부르는데,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를 뜻하는 단어의 앞글자였죠.
그리고 다음날, 콘스탄티누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이 경험은 그의 인생을, 그리고 로마 제국 전체를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3. 밀라노 칙령 : "이제 신앙을 자유롭게!"
313년, 콘스탄티누스는 동쪽 황제 리키니우스와 함께 밀라노에서 역사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그것이 바로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입니다.
밀라노 칙령의 핵심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누구든 원하는 신을 자유롭게 믿어도 좋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 대해 신앙의 자유를 선언한 것이죠. 하지만 이 칙령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그 동안 핍박받던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보호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
❤ 기독교인들이 몰수 당했던 재산을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 교회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무엇보다, 기독교인이라고 죽거나 고문당하지 않는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그 후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밀라노 칙령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는 직접 교회 건축을 후원했고, 기독교회 논쟁을 조율하는 "니케아 공의회(325년)"를 소집하기도 했습니다. 훗날에는 세례를 받고, 자신 역시 기독교인이 됩니다.
결국 380년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언하게 되는데 그 시작점이 바로 콘스탄티누스와 밀라노 칙령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콘스탄티누스와 미라노 칙령이 중요한가?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단순한 정치가가 아니라, 기독교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을 만든 인물입니다. "
밀라노 칙령은 단순한 법령이 아니라, 억압받던 신앙이 자유롭게 꽃필 수 있는 시대를 연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의 교회, 성당, 기독교 문화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박해의 시대는 끝이나고, 믿음의 자유가 시작되었다. 콘스탄티누스와 함께 기독교는 드디어 세상의 한가운데로 걸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