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6장, 야곱의 결단과 변화



창세기 46장, 야곱의 결단과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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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모든 소유를 이끌고 브엘세바에 도착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립니다.

그의 마음에는 여전히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떠나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복잡한 고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야곱은 애굽행을 결정하고도, 그 길이 하나님의 뜻인지 확인받기 위해 멈추어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응답과 약속 (3-4절)

그 밤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라.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은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드린 제사를 받으시고, 친히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세 가지 약속을 주십니다:

1.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2.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다

3. 반드시 너를 다시 올라오게 하리라. 요셉이 네 눈을 감기리라

이 말씀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약속이 야곱에게로 이어지는 전승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삶 전체, 심지어 죽음까지 친히 인도하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야곱의 평안한 순종 (5-7절)

하나님의 확신을 받은 야곱은 모든 자손들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처자들과 가축, 재산을 모두 이끌고, 바로가 보낸 수레를 타고 내려가는 장면은 ‘순종과 평안의 이주’로 그려집니다.



야곱의 가족 목록과 70명의 의미 (8-27절)

이 구절에는 야곱과 함께 애굽에 내려간 자손들의 이름이 상세히 기록됩니다.

레아의 자손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과 그 후손들 (33명)

실바의 자손들: 갓, 아셀과 그 후손들 (16명)

라헬의 자손들: 요셉, 베냐민과 그 후손들 (14명)

빌하의 자손들: 단, 납달리와 그 후손들 (7명)


“야곱의 집 사람이 애굽에 이른 자가 모두 칠십 명이었더라.” (27절)


70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에서 ‘완전수’, ‘충만한 수’로 여겨졌습니다.

비록 실제 가족 수는 더 많았을지라도, 성경은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을 상징하는 숫자로 칠십 명을 기록합니다.

(※ 사도행전 7:14에서의 ‘75명’은 요셉의 손자들을 포함한 수치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진 여정

야곱의 애굽행은 단순한 가족 이주가 아닙니다.

요셉이 노예로 팔려간 사건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구속사 계획이, 이제 온 가족의 이주로 확장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불안한 마음을 위로하시고, 약속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깨어있는 삶

우리는 이 땅에서 편안함, 안락함, 풍요로움에 빠지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유혹은 강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신분을 지키는 일이 가장 소중하고 위대한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곱의 고백,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9절)

야곱은 애굽의 왕 바로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 (창 47:9)


보통 믿음을 증거하려면 "평탄했습니다", "복된 삶이었습니다"라고 말할 법도 한데, 야곱은 오히려 '험악한 세월'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자기 힘으로 살려고 했던 인생의 결과를 돌아보며 말하는 진솔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동시에 바로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헛되고, 수고와 고통으로 가득할 뿐이라는 깊은 영적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축복, 왕도 축복하는 믿음의 사람 (7절, 10절)

야곱은 바로를 만났을 때와 그를 떠날 때, 두 번이나 바로를 축복합니다.

당시 애굽의 바로는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누구도 감히 그를 축복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담대히 축복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진정한 권위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라는 정체성을 확실히 붙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귀와 권세를 누린다 해도, 하나님을 모르면 그것은 험악한 세월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세상 기준으로는 연약해 보여도, 가장 존귀하고 복된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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