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 인간창조
창세기 2장은 창조 이야기 중에서 "인간 창조"에 초점을 맞춘 장입니다. 제 1장의 큰 틀을 배경으로, 2장은 더 세밀하게 인간 창조와 삶의 환경, 목적을 보여줍니다. 아담과 에덴 동산, 안식일의 의미 등이 등장하며, 인간이 이 땅에 살게 된 이유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풀어가고 있습니다.

천지가 다 이루어지니라의 의미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창세기 2장 1절)
이 말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완전히 끝났고, 흠 없는 형태로 마무리되었다는 선언입니다. 단순히 일이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에 따라 완성되었다는 것을 뜻하죠. 그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는 평가가 그 뒤를 잇습니다.
6일의 창조, 그리고 안식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2절)
하나님은 여섯째 날까지 창조 사역을 계속 하시고 일곱째 날에 마치셨습니다. 일곱째 날은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그동안의 창조를 마무리하시고 멈추신 날, 즉 완성의 날이자 쉼의 날이었습니다.
안식의 목적
하나님은 스스로 피곤해서 쉬신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안식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 쉬셨습니다. 안식은 단지 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예배하며 쉼을 누리는 삶입니다. 그래서 이 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하나님을 기념하고 경외하는 날로 거룩히 구별되었습니다.
안식일 제도와 의미
안식일은 창조 사역을 근거로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 후 쉬셨기 때문에, 우리도 그분을 본받아 쉼을 누려야 하는 것이죠. 오늘날에도 리듬 있는 삶, 쉼과 예배가 있는 삶을 살도록 하나님이 안식일 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생체 리듬도 7일 단위로 돌아간다는 과학적 근거로 이 말씀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복을 주셨다는 말의 의미
하나님이 안식일에 복을 주셨다는 것은, 이 날을 통해 인간과의 깊은 관계(교제, 회복, 쉼)가 일어나길 원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날을 기억하고 지키는 자는 하나님과의 친밀함과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제 7일을 거룩한 날로 삼으신 이유
하나님은 단순히 "일을 마치셨다"는 이유만으로 7일째를 구별하신 것이 아닙니다. 제 7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쉬셨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다른 날과 다르게 특별하게 여겨졌습니다. 여기서 거룩하다는 말은 단순한 종교적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로 따로 구별된 시간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날을 인간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하는 날로 지정하신 것이죠.
안식일의 시작은 창세기에서 볼 수 있지만 출애굽기에서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율법으로 제정되었습니다. 이 후에는 7년째 되는 해 "안식년", 49년 뒤의 "희년"(기쁨의 해) 같은 개념으로 발전했습니다. 안식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모든 것을 맡기고 쉬는 믿음의 표현으로 신약에 와서는 이 안식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한 영적 안식으로 연결됩니다.
안식의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영적 의미는 단지 쉬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쉼과 회복을 누리는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용서, 회복, 하나님과의 관계의 평안이 바로 안식의 진짜 모습이죠. 그래서 신약의 성도들은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매일을 안식의 삶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지키는 주일과 안식일의 관계
창조의 안식일은 일곱째 날(토요일)이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 첫째 날(주일)이기 때문에 신약 성도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킵니다. 이 날은 예수님의 부활과 새로운 창조의 시작을 기념하는 날이자,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고 하나님 나라를 기뻐하는 날로 정해졌죠. 즉, 주일은 신약의 새로운 안식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창세기 2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반복되어 사용되는데 이는 창조주로서의 권능(엘로힘)과,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하나님(여호와)라는 두 가지 속성을 함께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크고 위대한 창조주이지만, 동시에 아담과 가까이 교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창세기 2장 5~6절에 따르면 땅은 황폐하고 식물이 자라지 않았으며 수증기만 올라와 땅을 적시는 상태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직 인간을 통해 경작하고 돌보게 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은 자연을 관리하고 돌보기 위한 존재로 창조된 것임을 보여주는 말씀이죠.
인간은 땅의 흙(dust from the ground)으로 지어졌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생령(living soul)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이 육체적인 존재와 동시에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뜻하며 또한 흙에서 왔기에 인간은 결국 다시 흙으로 돌아갈 존재임도 함께 알게 되는 본문입니다.
※ 생령=육체와 영이 결합된 존재, 하나님의 형상과 인격을 지닌 특별한 존재임을 나타냅니다.
인간은 육체(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며,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6:19)
그러므로 우리는 육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덴동산
'에덴'은 히브리어로 기쁨, 즐거움을 의미합니다. 에덴 동산은 최초의 인간이 거주했던 장소이며 하나님이 직접 기쁨과 풍요로 채우신 완전한 환경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에덴 동산에서 흘러나온 네 강의 이름과 방향이 나와 있습니다. 그 위치를 현재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수 없습니다. 이는 인간의 죄로 인해 동산의 출입이 막히고, 잃어버린 낙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와 동시에 책임 있는 순종을 요구하셨다는 상징입니다.
생명나무
생명나무는 인간에게 생명과 회복, 영생의 능력을 공급하는 나무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교부 어거스틴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로 보았고, 칼빈은 하나님의 생명 근원이 아담에게 실제로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하는 나무라고 해석했죠. 성경 후반부인 요한계시록에서도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상징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왜 선악과를 두셨을까?
하나님은 인간에게 도덕적 선택의 자유와 순종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선악과를 동산 중앙에 두셨습니다. 인간은 단순한 자동 기계가 아니라 의지와 책임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었기에 하나님은 그 뜻에 자발적으로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것이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처음 명령하신 금지 규정입니다. 이 명령은 단순한 금지조항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신뢰하라는 관계적 명령이었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이는 영적인 죽음과 관계의 단절을 뜻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아담과 하와는 범죄 후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고 이후 육체적 죽음도 따라오게 되었죠.
아담과 하와
하나님의 창조 중 "좋지 않다"고 하신 유일한 것이 바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아담의 상태가 아직 완전한 관계 속에 있지 않았다는 걸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아담을 위해 하나님은 "돕는 베필"을 준비하셨고 그를 위해 깊은 잠을 자게 하신 뒤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이 잠은 단순한 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시는 신비로운 행위입니다.
이름을 짓다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짓는 행위는 주도권과 통치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심으로써 그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신해 관리할 청지기적 권위를 부여하신것이죠.
아담의 갈빗대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신 이유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본래 하나였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갈빗대'는 보호와 동행의 위치를 의미하며 남녀가 동등하지만 역할은 다르다는것도 알 수 있습니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왔다는 말의 의미는 여자는 남자의 뼈에서 지어졌기에, 서로의 깊은 연합과 일치를 상징합니다. 이는 단지 생물학적 관계를 넘어서, 가정과 공동체의 근본 원리를 나타내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