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 3. 톨레미왕조와 셀류쿠스왕조 통치기


신구약 중간사 3. 톨레미왕조와 셀류쿠스왕조 통치기



💬 신구약 중간사 톨레미왕조 시대(기원전 320년~198년)


1. 배경: 알렉산더 대왕의 갑작스러운 죽음

기원전 323년, 젊은 나이에 세계를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죠. 그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알렉산더 이야기 보러가기

문제는 후계자가 없었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지면서 권력 싸움이 벌어졌고, 그 중 두 세력이 유대 땅을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싸우게 됩니다.


ㆍ남쪽 이집트 : 톨레미 왕조 (장군 프톨레마이오스가 세움)

ㆍ북쪽 시리아 : 셀류코스 왕조 (장군 셀레우코스가 세움)

이 둘 사이에 낀 유대 지역은 말 그대로 '샌드위치 국가'처럼 이리저리 치이는 운명이었죠. 한국과 비슷한 느낌이라 이해하기 쉬우실꺼라 생각돼요. ^^


2. 톨레미 왕조의 시작-조용한 듯 긴장된 지배

기원전 320년경, 톨레미 1세가 유대 땅을 차지하게 되면서 톨레미 시대가 시작됩니다. 이집트에서 온 그리스계 왕들이었지만, 유대 땅을 통치할 때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정책을 폈어요.

톨레미 왕조는 지식을 사랑한 왕조로 유명했는데 그 중심이 바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죠. 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 때는 전 세계의 지식을 모으기 위해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도록 명령해요.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칠십인역 (Septuagint. LXX)!

히브리어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성경으로, 유대인들이 헬라 문화를 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나중에 예수님 시대 유대 디아스포라들이 사용했던 성경이 됩니다.


3. 유대인의 삶 : 적응과 긴장 사이

톨레미 왕조는 세금과 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어느 정도 종교와 문화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어요. 하지만 헬레니즘 문화(그리스식 문화)가 점점 파고들면서, 전통적인 유대 문화와 충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예시로는

유대 귀족들 중엔 그리스어 이름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유대 청년들이 등장(당시 운동은 옷을 벗고 하는 문화라 큰 충돌이 있었데요.)
우리는 유대인인가 그리스인인가? 라는 정체성의 혼란이 가중되었죠.


4. 톨레미 시대의 끝과 다음 장

약 120년 동안 유대 땅을 통치한 톨레미 왕조는 결국 기원전 198년, 안티오코스 3세가 이끄는 셀류코스 왕조에게 패배하면서 유대 땅을 넘기게 됩니다. 이 때부터 유대인의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마카비 혁명, 한누아 이야기로 이어짐)

톨레미 시대는 비교적 평온했지만, 그 속에서 유대인들은 점점 자신들의 정체성과 믿음을 지켜야 하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어요. 이 시기를 이해하면 신약 성경의 배경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답니다. 




💬 셀류쿠스 왕조 통치기(기원전 198년~기원전 164년)

1. 배경 : 판이 바뀌다! 유대 땅, 시리아로 넘어가다

이전까지 유대 땅은 이집트의 톨레미 왕조가 통치했어요. 그런데 기원전 198년, 셀류쿠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가 유대 땅을 점령하게 되면서 통치권이 북쪽 시리아로 넘어가게 됩니다. 초반에는 괜찮았어요. 안티오코스 3세는 유대인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거든요. 하지만, 그 아들 안티오코스 4세가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180도 달라지게 됩니다.


2. 악명 높은 왕의 등장 :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안티오코스 4세는 '에피파네스(Epiphanes)', 즉 "신의 현현"이라는 이름을 썼어요. 자기가 신처럼 숭배받기 원했던 것이죠. 하지만 유대인들 사이에선 그를 "에피마네스(Epimanes)", 즉 "미친 자"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고유의 신앙을 지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고, 강제로 그리스 문화를 주입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탄압이 시작됩니다. 


3. 믿음을 지키는 게 죄? 유대인 박해 이야기

다음은 그가 유대인들에게 내린 끔찍한 명령들입니다.

ㆍ율법책(토라) 소지 금지
ㆍ할례 금지(유대인의 신앙 상징)
ㆍ성전에서 유대식 제사 금지
ㆍ돼지고기 강제 섭취 명령
ㆍ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우스 신상 설치+돼지를 제물로 바침

이것들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치욕적인 모욕이었어요.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곳인데, 이방 신의 제사를 강제로 올리다니요!~


4. 마카비 이야기의 서막 : 믿음을 향한 저항

그런 와중에 한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이 역사를 바꾸게 됩니다. 
모딘이라는 시골 마을, 왕의 명령에 따라 이방 제사를 지내려는 장면을 보고 마따디아라는 제사장이 이 광경을 보고 참지 못하여 로마 병사와 이방인을 처치합니다. 그리고 외치죠.

"하나님의 율법을 위해 싸울 자는 나를 따르라!"

이 한마디로 마카비 혁명이 시작되고, 그의 아들 유다 마카비가 본격적인 전쟁을 이끌게 됩니다.


미리 마카비 혁명의 전개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ㆍ소수의 유대 민병대 vs 잘 훈련된 셀류쿠스 군대
ㆍ게릴라 전술을 사용해 기적 같은 승리
ㆍ결국 예루살렘 성전 탈환(기원전 164년)
ㆍ성전 정결식을 기념하여 "수전절"이 시작됨.

위의 자세한 내용은 신구약 중간사 4로 돌아올께요.


셀류쿠스 왕조 시기는 믿음을 포기할 것인가, 지켜낼 것인가의 시험대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힘은 없었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용기로 역사를 바꾸는 이야기를 써내려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신약 성경의 배경 속에 바로 이 뜨거운 신앙의 전쟁이 깔려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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